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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4년 전 월드컵 응원전이 벌어졌을 때와 비슷했다.서울시청 앞 광장이 오성홍기로 뒤덮였다.4월27일 일요일, 거리는 순식간에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었다.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중국의 공습’이었다.현장에 있었던 한 경찰관은 “한국에 중국인이 이렇게 많았나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라고 말했다.올림픽공원에서 서울광장까지 성화는 무사히 봉송되었지만, 그 막후의 논란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이날 오성홍기 뒤편에서는 빨간색만큼이나 자극적인 폭력이 자행되었다.서울시청 옆 지하철 입구에서는 한국인 여성 6~7명이 중국인 60여 명에게 둘러싸여 욕설과 고함을 들으며 공포에 떨다가 10여 분 만에 경찰들에게 ‘구출’되었다.중국인들은 지하철 개찰구까지 따라가 여성들을 위협했다.덕수궁 입구 대한문 앞에서는 티베트평화연대(이하 티베트연대) 회원들이 작은 플래카드를 펼쳐들다가 발길에 차이고 얻어맞으며 2백여 m 떨어진 정동교회까지 도망쳐야 했다.현장에 있었던 티베트연대 정웅기 대변인은 “그들은 경찰 저지선까지 뚫으면서 쫓아왔다.위기감을 느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플라자호텔 로비에서는 정복을 입은 경찰이 중국인들로부터 집단적으로 얻어맞았다.
이에 앞서 성화 봉송 개막식이 열린 서울 올림픽공원에서도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합법적으로 시위하던 최용호 자유청년연대 대표는 날아온 절단기에 가슴을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다.중국인들은 성화가 올림픽공원을 출발한 직후부터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돌, 음료수가 들어 있는 캔, 물병, 오성홍기를 달았던 깃대 등이 시위대를 향해 날아들었다.이날 성화 주위에서는 눈 돌리면 보이는 것이 경찰이었지만, 시위하는 한국인들 옆에서 경찰은 보기 힘들었다.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한국은 멀고, 중국은 가까웠다.한국인들은 도망다녔고, 중국인들은 쫓아다녔다.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에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다시 보기’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 다시 보기’에 치우쳤던 흐름이 새로운 패권국가를 자임하는 중국의 실체를 재조명하는 쪽으로도 관심이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정치적으로는 지난 10년간 상대적으로 중국과 가까이 가면서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를 강조했던 것에서 이제는 미국에 가까이 가면서 ‘중국으로부터의 자주’를 외치는 흐름이 주목될 수 있다.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는 벌써 ‘중화 민족은 없다!’ ‘성화 폭력과 한국의 우파 민족주의’라는 글이 올랐다.‘중국 논쟁’의 막이 올랐음을 보여주는 단초다.
버스 동원 등에 수천만원 사용…유학생회 힘만으로 가능했을까
또한 사회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가 외국인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번처럼 집단적으로 시위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난처했다.지금 같으면 폭력 사태가 발생해도 누가 저질렀는지를 파악할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지금까지는 외국인들의 인권 문제나 불법 체류 여부 등이 주목되었지만 이제는 합법일지라도 전체 사회 틀 속에서 그들을 ‘관리’하는 문제가 새로이 떠올랐다는 것이다.현재 통계상으로는 국내에 와 있는 중국 유학생 숫자는 3만1천여 명에 이른다.그러나 실제로는 6만여 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경찰 관계자는 “한마디로 정확한 통계가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번 폭력 사태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일까, 계획적으로 발생한 것일까. 이에 앞서 따져보아야 할 것이 있다.대다수가 유학생들인 8천여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모였을까 하는 점이다.동원은 상당히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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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제공 |
우선 지방 각지에서 동시에 모여들었다.성화는 오후 2시20분에 올림픽공원을 출발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이미 오전 11시부터 서울광장 주변은 중국 유학생들 판이었다.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 ㄱ씨는 지하철 시청역 주변에 정차해 있는 버스들을 보았다.그는 “전북 지역에서 올라온 8대의 버스였다.오성홍기가 펄럭이는가 싶더니 잠깐 사이에 1천여 명으로 늘어나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지방에서 올라온 버스는 올림픽공원 부근에서도 목격되었다.부산에서 올라온 관광버스, 경남 진주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사진에 찍혔다.사진에 찍힌 부산의 관광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세 대의 버스가 부산 지역 두 개 대학의 중국인 유학생 100여 명을 태우고 올림픽공원으로 올라온 것으로 밝혀졌다.이들은 1주일 전에 버스를 예약했다.버스를 빌리는 비용으로만 3백만원 가까이 들었다.버스회사 사장은 “요즘은 성수기이기 때문에 버스 한 대 빌려주는 데 거의 100만원을 받는다”라고 말했다.전액 현금으로 결제했다.식사비 등을 합하면 5백만원 가까이 들었을 것으로 추산된다.유학생회가 부담했다고 보기에는 큰 액수다.당국이 파악한 숫자만 부산 지역에서 2백80여 명, 대구 지역에서 5백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다.호남 지역은 바로 서울광장으로 갔고, 영남 지역은 올림픽공원으로 갔을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추산해보면 이들이 버스를 빌리는 데 사용한 돈만 최소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밥값 등을 합하면 훨씬 커진다.과연 이 정도 규모의 돈을 유학생회가 마련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의 행동도 조직적이었다.성화 호위 임무를 맡았던 한 경찰관은 “중국인들은 성화 주자가 바뀌는 곳이나 주요 길목에는 어김없이 모여 있었다.우리 같으면 시작하는 곳에 있다가 끝나는 곳에서 합류할 텐데 그것이 아니었다.처음부터 끝까지 22km에 달하는 길을 따라온 중국인들도 있었다.길 중간 중간에 직접 도로로 뛰어들어 성화를 호위하겠다고 나서는 중국인들을 막느라고 내내 진땀을 흘렸다”라고 설명했다.이 경찰관은 “성화를 호위하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처음 목표는 티베트 단체 등 올림픽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막는 것이었는데, 현장에서는 찬성하는 중국 유학생들을 막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라고 전했다.
소수의 조직된 그룹이 폭력 시위 주도한 듯
이밖에도 이들이 들고 온 오성홍기의 크기나 문구도 똑같았다.서울광장에서는 빨강 모자나 하얀 모자를 쓴 사람과 가슴에 배지를 단 ‘특별한’ 사람들이 목격되었다.티베트연대 정웅기 대변인은 “중국 유학생들은 50명씩 90개 조로 편성해 움직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동원이 조직적이었다면 폭력 행위 또한 조직적이었을까. 그렇다고 보여진다.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위하다 구타당한 티베트연대의 한 회원은 “중국 유학생들은 절대로 얼굴은 때리지 않았다”라고 증언했다.올림픽공원에서는 언론에 보도되면 안 된다며 카메라를 막아서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하였다.티베트연대 정웅기 대변인은 “정확히 두 부류였다.한 그룹은 말 그대로 환영 나온 학생들이었으나 다른 그룹은 폭력적이었다”라고 말했다.이로 미루어보면 이날 폭력 시위는 소수의 조직된 그룹이 주도한 것 같다.
중국 유학생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견주어보면 경찰의 대응은 어수룩하기만 했다.처음 예상부터 틀렸다.경찰 일각에서는 진작부터 경보음을 울렸다.“중국측의 조직적인 대응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여 뜻밖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그러나 상층부는 “증거가 있느냐”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런 보고에 주목하지 않았다.이런 안이함은 결국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화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경찰관은 실태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올림픽공원에 ‘많아야 1천명’ 정도 모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결과는 3천명이 넘었다.단순한 환영 인파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 시위 인파로 변했다.우리는 당황했다.행사는 20분 이상 지연되었다.원래는 성화를 보호하기 위해 양쪽에 30명씩 60명의 경찰이 경호하기로 되어 있었다.이것이 양쪽에 50명씩 100명으로, 나중에는 그 100명 외부에 기동대 병력 100명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성화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벌어졌던 시위대의 폭력 사태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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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연합 |
중국인들의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경험이 없는 경찰들은 혼란스러웠다.자칫 잘못 대응하면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그러면 자신들이 문책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간부들도 몸을 사렸다.물론 경찰의 경고를 듣지 않고 서울광장으로 접근한 사람들도 스스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격이 되었다.티베트연대의 경우 애초 서울광장까지 행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경찰의 경고를 받고 교보문고 앞에서 공식 해산했다.그러나 일부 회원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위를 하려다가 폭행당했다.
이번 사태에 주한 중국대사관이 개입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그러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국제방송사인 ‘SOH 희망지성’은 4월28일 “실제적으로 중국 당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CSSA(중국 외국인 학자·유학생 연합회)가 중국 유학생들을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조직은 대사관의 명령에 따라 환영 행사에 동원하거나 반 중국 단체들을 공격하기도 한다”라고 보도했다.이 방송사는 또 “오성홍기 일부는 중국 산동성에서 온 것이다”라고 보도했다.일본 아사히신문이 지난 4월26일 일본에서 성화를 봉송할 때 중국인 유학생 5천여 명이 주일 중국대사관측으로부터 경비를 지원받고 동원되었다고 4월29일 보도한 것도 주목된다.
북한 주재 중국대사는 차관급, 주한 대사는 국장급
사건의 여파는 컸다.인터넷은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이냐”라며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과 중국을 성토하는 글로 들끓었다.중국 유학생들이 태극기나 오륜기는 들지 않고 오성홍기만 들고 폭력적으로 행동한 것이 감정을 더 자극했다.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사과는 하지 않은 채 “나쁜 의도가 없었다”라며 오히려 유학생들을 옹호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당국의 대응도 빨라졌다.경찰은 48명으로 검거 전담반을 편성해 신원이 확인된 유학생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시민들은 링쿠푸이 주한 중국대사와 중국유학생연합회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패권주의 문화와 우리 정부의 저자세 외교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중화주의의 부흥’을 내건 중국은 빠른 경제 성장에 힘입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힘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이번 사태 또한 이런 패권 의식이 은연중 드러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이미 북한에 대해 강도 높은 영향력을 확보한 중국은 한반도 전체를 상대로 한 힘의 논리를 노골화하고 있다.
2004년에도 타이완 천수이벤 총통의 취임식에 참석하려던 국회의원들에게 주한 중국대사관이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참석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일이 있었다.도를 넘은 이러한 행동에 대해 당시에도 비판이 일었으나 이번 사건만큼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키지는 않았다.조선일보는 주한 중국대사가 최근 어느 자리에서 티베트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무식한 질문을 하지 말라”라고 반박했다고 보도했다.무례와 오만함을 보여주는 사례다.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대사의 직급 문제다.주북한 중국대사는 차관급인 데 반해 주한 중국대사는 국장급이다.후진국들과 같은 직급이다.직급상 세 직급 차이가 난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대중국 저자세도 고칠 때가 되었다.다른 사건과 달리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침묵하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사태 3일 뒤에야 입장을 밝혔다.한나라당은 부대변인이 ‘경찰은 중국인 시위대의 내외국인 폭행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합당한 처벌을 해야만 한다’라는 성명을 4월29일 발표했다.대변인 성명은 없었다.이처럼 정부나 정치권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할 말은 하는’ 외교는 모든 나라에 적용되어야 한다.중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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