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횡령과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던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게 2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됐습니다. 바로 이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2심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죠. 일부 언론들은 훌륭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던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윤영란 기자와 함께 재벌 관련 판결을 둘러싼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윤 기자, 정몽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파격적인 사회봉사 명령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 법원은 정 회장의 횡령과 배임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8,4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라, 그리고 준법경영에 대한 강연과 기고를 하라는 이색적인 사회봉사 명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또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도 집행유예가 선고되면서 우리사회에 다시 ‘유전 무죄’ 논란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녹취> “현대차 정몽구 회장에 이어 김승연 회장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또다시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보복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화 김승연 회장, 지난 11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김 회장은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이에 앞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보석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았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에게도 역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정 회장의 유죄는 인정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경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가 밝힌 집행유예 결정의 주된 사유였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정 회장에게 8400억 원의 사회 환원 약속을 지키고, 준법 경영을 주제로 기고와 강연을 하라는 전례가 없는 사회봉사명령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국민들의 여론도 반영해 집행유예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지만 판결 이후 실제 여론은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식 판결이라는 비난으로 모아졌습니다. <인터뷰> 송호창(민변 사무처장): “금전배상, 보상을 통해서 사회봉사명령을 대신하기로 한다면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은 형벌을 받지 않으면서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이번 판결 같은 경우는 실제입법취지에도 맞지 않는 그런 점이 있고, 그래서 결국은 상고심에서 최종적인 판단을 하겠지만 법률적인 위법성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동안 사법부는 수장까지 나서서 법의 형평과 화이트칼라 범죄 엄정 처벌 의지를 천명해왔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의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최소한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이 공식처럼 이어졌고, 이번에도 그 공식이 예외 없이 적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몽구 회장 등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과 관련해 일부 언론의 논조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법 감정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부는 정몽구 회장을 법대로 처벌할 경우 현대자동차의 경영에 큰 어려움이 예상되고, 결국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민 끝에 집행유예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런 입장을 적극 변호하고 나섰습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소식은 신문, 방송할 것 없이 모든 언론이 주요뉴스로 상세히 다뤘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법원이 유독 재벌에 대해관대하다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일부 보수 신문과 경제지들은 정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환영하고 나섰습니다. 중앙일보는 ‘감옥이 능사가 아니다, 실질적 죗값을 치러야한다’고 말한 부장판사의 말을 1면 제목으로 뽑아놓고,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게 진정한 사회봉사라는 부연 설명까지 비중 있게 인용했습니다. 일부 경제지들 역시 현대차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거론하면서 집행유예 선고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한국경제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다시 뛴다.’는 제목을 1면 머리기사로 뽑았고, 이번 판결로 비자금사건이 일단락되면서 5대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다시 뛸 수 있게 됐다며, 정 회장의 이력까지 소개하면서 집행유예를 반겼습니다. 서울경제와 매일경제는 사설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법원이 평가한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매일경제는 어려운 경영 여건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부도덕한 집단인양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까지 늘어놓았습니다. 주요 외신들이 이번 판결을 두고 한국 사법부의 기업 범죄 척결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적으로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인터뷰> 이봉수 (세명대 언론학과 교수): “총수들의 비리는 거의 다 묻히고 업적은 과장되고 미화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광고를 나눠주고 홍보조직, 로비력에 언론이 휘말리고 비판의식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는 것이죠.” 재벌기업과 재벌총수는 분리시켜 볼 필요가 있지만 우리 언론은 그 둘을 지나치게 동일시하고, 그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것 같은데요, 결국 그런 보도태도가 재벌총수가 피고인일 경우 사법부를 고민에 빠트리게 하는 한 원인이 됐다고도 할 수 있나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가 공공연하게 정 회장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거론한 점으로 미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사실 지난해 초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일부 보수 언론들은 지속적으로 국내 경제 혹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거론했고, 정 회장의 혐의가 드러난 뒤에는 사법 처리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논조를 보였습니다. <녹취> MBC 뉴스: “금융권의 마당발로 통하는 김재록 씨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오늘 아침 현대차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지난해 3월, 현대차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보수신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기업을 일종의 피해자로 바라보면서 수사가 기업 활동 등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수사에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정 회장이 구속되자 현대차에 대한 언론의 걱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대다수 신문들은 동남아 공장 건설이 백지화 됐다거나 글로벌 경영에 비상에 걸렸다면서 위기감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고, 이런 보도는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위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정 회장은 61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지난 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되자, 보수 언론들은 현대차 글로벌 경영의 손발이 묶였다며 위기감을 더욱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경제 위기론과 함께 우회적으로 정몽구 회장을 감싸고 돈 보도 유형에는 정몽구 회장의 역할론과 관련한 기사들도 포함됩니다. 지난 달 22일 정 회장이 여수 엑스포 유치 명예위원장으로 위촉되고, 정 회장 스스로 이를 항소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강조하자 언론 또한 정 회장이 엑스포 유치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임을 적극 부각했습니다. 재판부마저 정 회장이 엑스포 유치에 나서고 있다는 신문기사들을 보고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다고 밝힐 정도였습니다. <인터뷰> 김상조(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정말 정몽구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게 되면 현대자동차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 이런 식의 불안을 갖게 하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의식을 왜곡시킨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가 있겠구요.” 정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시점을 전후해 현대차 그룹과 관련한 사건이 잇따랐죠?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도 한번 살펴볼까요? 네, 항소심 선고공판 당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그룹의 부당 내부거래 행위에 대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공판 하루 전에는 현대차 노사의 임금과 단체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이 두 사건과 관련한 기사도 우리 언론의 재벌 관련 보도 태도가 어떠한지 살필 수 있는 사례들입니다. 지난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기아차그룹에 대해 63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를 당국이 처음으로 적발해 제재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는 지적입니다. <녹취> 김원준(공정위 시장감시본부장): “계열사에 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물량 몰아주기 하는 행위에 대해 제동을 건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사마다 기사 가치 판단에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 기사를 1면에 다루면서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와 정 회장의 횡령과도 연관이 깊은 글로비스의 부당내부거래 내용을 자세하게 짚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문화 등은 해당 기사를 지면 구석에 조그맣게 배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정 회장 선고공판 하루 전에 타결된 현대차 임, 단협 관련 보도도 분규시작과 타결 후 기사를 비교해 보면 노사분규와 파업 등에 대한 일부 언론의 몰이해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현대차 노사협상이 타결되자 대다수 언론은 10년만의 무파업 타결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상생의 역사를 썼다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협상 타결 직전까지 보수신문들은 쟁의발생을 결의한 상태인 현대차 노조를 향해 마치 파업에 돌입한 듯이 융단폭격을 퍼부었습니다. 1년에 파업 3번, 현대차 노조 억지 등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노조 측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면서 노측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않은 채 황당한 요구라고 몰아갔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0일자 신문에 ‘회사 측이 해외 공장을 신설할 때는 노조의 심의의결을 받아야 한다’며 노조의 무리한 경영참여 요구를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가 다음날 노조의 항의를 받고,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서만 심의의결토록 한다’는 노조의 입장을 알리는 내용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장규호(현대차노조 홍보부장): “헌법에 33조에 보장 돼 있는 정당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법인양, 마치 파업하는 행위 자체만 가지고 우리가 뭘 요구하는지 우리들 주된 요구가 뭔지는 전혀 보도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대기업 이기주의다, 매번 파업했다. 주된 내용들이 보도가 그런 내용이거든요.” 대기업 노조가 권력화, 귀족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이번 현대차 비자금 사건 판결과 현대차 노사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기업과 재벌 총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노조에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인정하지 않는 언론의 보도태도는 공정한 중재자로서, 또 권력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입니다.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