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기사를 통해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영화도 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작한 지 50년 이상이 된 영화를 문화재청에서 근대동산문화재로 등록하기로 결정하면서 영화가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영화를 상영했던 극장만 문화재로 인정되었지만, 이제 필름도 문화재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영화 필름이 문화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지극히 원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문화재가 우리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담고 있는 예술품이라면, 영화 필름이 문화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영화는 대중예술로서 다른 어떤 매체보다 동시대적 삶의 흔적을 생생하게 담고 있기도 하고, 또 예술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많기도 하다. 그리고 문화재가 반드시 부동산에 머물 이유도 없다. 무형문화재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가.
이번에 등록 심사 대상 영화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영화와, 해방 이후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2007년을 기준으로 50년 전인 1957년까지 제작된 영화들이다. 이 가운데 현재 필름으로 존재하는 38편을 심사대상으로 했다.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것,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 당대 모습을 반영한 것 가운데 자료적 가치가 큰 것 등을 우선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등록예정인 영화는 <미몽>(양주남, 1936), <자유만세>(최인규, 1946),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48),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 <피아골>(이강천, 1955), <자유부인>(한형모, 1956), <시집가는 날>(이병일, 1956) 등 7편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영화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정해 준 것에 대해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초창기 영화가 천대 받던 현실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숱한 영화인들이 멸시와 천대를 견뎌왔는지는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영화가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된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의 선정을 보면서 몇 가지 아쉬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자유만세>에 대한 것이다. <자유만세>는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영화로서, 광복의 기쁨을 그린 영화이다. 일제의 간악한 탄압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국내 지하 비밀조직의 독립운동을 극적인 구조로 그리고 있다. 해방 직후 광복영화의 붐을 형성했던 원조격인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이런 영화라면 당연히 문화재로 등록되어야 한다. 작품성 또한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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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근은 조선인들을 만주로 이민 보내라는 내용의 영화 <복지만리>를 연출했다. |
문제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전창근이 썼고, 연출은 최인규가 맡았으며, 영화 속 지하 비밀조직의 투사 역할도 전창근이 맡았다. 그런데 전창근과 최인규의 일제 말기 행적이 문제가 된다. 전창근은 “일제의 제국주의 정책에 영합하는 주제”인, 조선인들을 만주로 이민 보내라는 내용의 영화 <복지만리>를 연출한 후, 1942년과 1943년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친일연극을 연출했다. 이 연극으로 당시 일제의 정책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국민연극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최인규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일제말기에 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아이들이 일제의 전쟁을 위해 가미가제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최인규의 영화가 정말로 무서운 것은 동양과 구미(歐美)의 대결 구도 속에서 아이들에게 동양을 위해(또는 동양을 대표하는 천황을 위해) 기꺼이 나가 죽으라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편이 아니라 여러 편을 연출했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국가의 예산을 들여 보존하는 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는가? <자유만세>에는 광복 이후의 생생한 모습도 없고 예술적 완성도도 그리 높지 않다. 내용도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영화에는 서울에서 비밀 결사조직이 무장 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제 말기 서울에서 그렇게 비밀결사 조직 활동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분위기에 편승해, 무엇보다 자신들의 일제말기 친일행적을 지우기 위해 발 빠르게 광복영화를 만들었다. 때문에 일제말기 친일단체 활동과 친일 성향의 글을 투고하면서 적극적으로 친일활동을 했던 안종화조차 “실로 발 빠른 변신”이라고 했던 것이다.
친일성향의 영화일지라도 문화재로 등록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편에서는 일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라고, 그래서 “친일의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큰 작품은 문화재 지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딴은 맞는 말이다. 부끄러운 역사가 어찌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운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후대들의 몫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을 굳이 문화재로 지정해서 기념하고 보호할 필요는 없다.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문화재로 지정된다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면죄부를 주는 행위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라에서, 때문에 개인들도 반성을 하지 않은 나라에서 무엇 때문에 국가에서 그것을 기념하고 보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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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은 분단의 현실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
“친일의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큰 작품은 문화재 지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친일의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 분명 존재할 수 있다. 친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친일의 상황을 담아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친일행위가 이해는 되지만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영화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순간 그들의 친일행위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문화재는 후세에 길이 남길 유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혹자는 내가 지나치게 좁은 잣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넓고 포용적으로 본다는 것이, 말은 좋지만 결국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태도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 역시 자신들의 잣대에 맞게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국가에서 지정해 보호하는 문화재는 국민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예술작품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등록 예정인 작품 가운데 <피아골>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피아골>은 빨치산을 지나치게 잔혹하고 동물적인 광기의 집단으로 그리는 데 많은 부분 치중함으로써 분단의 현실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분단을 넘어서려는 의식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에 제작된 한국영화는 이 영화를 기준으로 빨치산을 그렸기 때문에 짐승 같은 살인마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수의 필름 가운데 문화재로 선정하는 작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번 문화재로 등록되는 순간 후세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더구나 영화는 시각, 청각을 모두 동원해서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예술에 비해 그 효과가 훨씬 강하다. 이번의 선정에 못내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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