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중문화를 찾아서- 영화
2001년, 한국영화는 51편 제작에 약 1540만명의 관객이 46.8%라는 극장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130편 개봉에 1460만명 동원 44%의 극장 점유율을 기록한 헐리웃 영화를 압도한다(2000년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1.3회). 그리고 이후 그 기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 매년 영화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한해 한해가 거듭되고 있다.
문화는 보석이다. 그 중에서도 영화는 보석 중의 보석, 찬란히 빛나는 보석이다. 그리고 영화는 꿈이며 사랑이며 미지의 세계로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하는 영혼의 보물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너무나 사랑하고 즐기는 대중문화가 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자동차 1백만대 수출하느니 반지의 제왕같은 영화 한편이 벌어들이는 돈이 더 큰 것이 현실이다. 한국산 자동차를 수출해서 1대당 수만원을 남긴게 고작이니 1백만대 팔아봐야 수백억원을 버는 셈이다. 타이타닉은 4천억 들여 5조를 벌여 들였고 앞으로도 가만히 않아 영원히 돈을 벌 것이다.
영화는 원래 1895년 프랑스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처음 태어나 무성영화·흑백시대를 지나면서 이제는 색채영화·대형영화로 발전했고 컴퓨터그래픽·애니메이션 등 최첨단 영상기법까지 총동원되면서 나날이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물론 지금은 '헐리웃영화'라고 불리는 미국식 영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일찍부터 컬럼비아·MGM·20세기폭스·파라마운트 등 거대 영화제작사들이 숱한 영상 스타들과 감독을 길러내면서 언제봐도 시대감에 뒤지지 않는 손색없는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금도 다양한 장르에 걸친 독창적인 소재나 기법의 영화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미국 이외에는 한국?일본·중국·홍콩·인도 등과 그나마 의무영화제(스크린쿼터제)를 하고 있는 프랑스와 같은 유럽국가들 몇몇이 영화 산업이 살아 있는 정도다.
한국영화는 1919년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년대 나운규를 비롯한 초기의 실험적 단계(1919년 10월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투'가 한국영화의 시발점이며, 이 영화가 연극을 하면서 무대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야외장면들을 영화로 비춘 연쇄극용 영화라 첫 순수 극영화로 1920년 상영된 윤백남의 '월하의 맹서'를 꼽기도 한다)를 지나 50·60년대부터는 한국영화의 기본토대가 마련되고 그 뿌리를 내린다.
1970년대 초반까지 신상옥·이만희·김승호·장동휘·엄앵란·신영균·최무룡·박노식·김진규·신성일·여배우 트로이카(문희.남정임.윤정희) 등이 화려한 영상시대를 꽃피웠다. 특히, 1960년대는 명실공히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이후 질적 차원의 전환이 없던 터에 TV에마저 완전히 눌렸다가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완연한 쇠퇴기에 접어든다. 이장호, 배창호, 장미희·정윤희·유지인 트로이카가 활약하기는 했지만 영화사적 의미나 독창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나마 1974년에 상영된 ‘별들의 고향’이 흥행의 힘과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하게한 것이 돋보이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강우석·강제규, 안성기·강수연·한석규·박중훈 등으로 이어지는 영화인들이 한국영화의 맥을 잇다가 2000년대를 접어들면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실 미국 헐리웃의 공세에 대다수의 나라는 함락되었다. 그나마 몇몇 나라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자국영화산업을 사수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은 자국영화전용관제를 하고 있고, 프랑스는 TV방송과 연계시켜 유럽상영분을 60%(그중 프랑스 몫이 40%)로 지키도록 하고 있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자국영화 점유율에서 한국과 더불어 일본·프랑스가 세계 선두권이다.
한국도 한국영화의 쇠퇴기를 틈 타 헐리웃영화가 파고 들었다. 80년대 후반에는 할리우드 직배사가 한국시장에 진출하면서 그 빗장을 열었고, 88년에는 첫 직배 영화가 개봉된다. 이 이후 헐리웃영화는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시장을 완전히 잠식해 버린다(미국영화는 1923년 쯤 상륙하였고 수입은 19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40년대 중반이후 미국영화의 수입은 거의 독점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자 박정희정부가 들어서면서 영화시장을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적용하면서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반면 멕시코는 시장개방을 한답시고, 5%에 해당하는 스크린쿼터제를 하다보니 자체 제작이 사라지면서 영화인프라와 영화산업이 붕괴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국산영화 의무상영제(스크린쿼터제)가 한국영화산업을 지탱한 버팀목의 하나로 구실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한해 영화제작편수가 70년대에만 하더라도 한해 1백편도 훨씬 넘다가 90년중반 이후에는 계속 줄어들다가 2000년대부터 맹렬하게 다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 스크린쿼터제가 있었기에 제작될 수 있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80년대 후반이후 영화계에서는 스크린쿼터 수호 운동이 벌어지면서 문화적 애국주의가 물결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 결과인지 한국영화에도 관객이 늘기 시작했고, 적극적으로 한국영화를 찾게 된다. 이 점에서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산업이 세계경쟁력을 갖기까지 일정기간이라도 유예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마냥 우리 의지대로만 고집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헐리웃이 이미 전체 해외수입 비중에서 70%를 넘어섰고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스크린쿼터제가 스리랑카·파키스탄 등 세계 11국 정도가 고수하고 있는 제도이며 이들 나라중에는 힘을 합쳐 미국과 공동대응할 만한 영화산업국이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미 영화협회(AFMA)의 공세는 거칠고 집요하다. 특히 한국산업을 위해 한미 FTA 체결이 급선무가 된 마당에 미국이 내세우는 전제조건인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를 마냥 늦출 수도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2006년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146일에서 73일로 전격 축소 조정하고는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한국영화는 본질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시점을 동시에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이점에서 스크린쿼터에 매달리기보다는 영화산업의 힘과 한류를 통해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영화는 70년대이후 80년대 후반까지의 '절대로 보지 않는다' 라는 비판적 분위기에 함몰되었고,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봐 줘야 한다' 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90년대 중반부터 '볼 만하고 보고 싶다' 라는 관객의 변화를 보여 왔다.
이처럼 90년대 중반까지 시민들은 대체로 한국영화에 몹시 비판적이었다. 방화에 대한 의무감에 시달리다 지친 표정도 역력했다. 사실 한국영화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우선 70년대 초반 영화의 전성시대는 정치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한 소재의 제한, 제작사 허가제, 외화수입에 단맛을 들인 극장과 제작사들 그리고 이들에 의한 마지못해 만들어진 형식적인 영화의 범람 등으로 인해 그 화려한 막을 내린다. 그러다보니 70년대 이후 80년대 후반까지는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암흑기 였다.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의 부재였다. 좋은 영화는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법이다. 즉, 소재나 기본 줄거리가 탄탄하게 받쳐 주어야 하는데, 도무지 창의성과 독특한 개발능력은 보이지 않은 채 베껴쓰기·그저그런 줄거리 답습이 심했다. 외설·폭력·저속으로 물든 3류 영화가 판치던 현장은 심각한 치부였다. 이러다 보니 영화사에 남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별들의 고향?겨울나그네 등이 손꼽히는데 이 역시 시나리오의 탄탄함이 그 힘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영화제작환경의 열악함도 문제였다. 영화다운 영화로 찍자니 제대로 된 영화제작소가 없었다. 또한 제작비도 그다지 책정되지 않았다. 제작자도 그저 제작의 구색만 갖추려 할 뿐 적은 돈을 들여 정부나 주위 시선을 의식한 최소한의 의무할당치만 제작하려 드니 그랬다. 정작 큰돈은 외화수입과 외화를 상영하는 극장운영으로 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시장이 단순히 헐리웃 영화의 소비시장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는 확고했다. 한국영화가 국내시장을 확고하게 지켜내고, 세계인들에게도 사랑받기를 염원했기에 그랬다.
다행스럽게도 90년대 후반이후 한편이라도 제대로 만들려는 시도가 나타났고 90년대 중반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게 되었다. 93년에는 '서편제'가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기에 이르렀고, 95년부터 99년까지 한국영화 관객수가 연평균 28%나 증가한다.
그러다가 2000년이후부터는 좋은 시나리오, 뛰어난 감독, 치밀한 진행, 빠른 템포, 좋은 배우의 좋은 연기 등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영화산업국으로 재무장하게 되었다. 쉬리·주유소습격사건·공동경비구역 JSA·친구·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 등이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영화의 중흥기이자 제2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특히 쉬리는 전국 관객 6백만명을 동원하면서 그 신기원의 주인공이 되는데, 쉬리는 한국영화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라는 현실적인 인식을 갖게 한 작품이다. 2006년에는 왕의 남자가 1천2백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영화산업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시장을 향해 빠른 발걸음을 하고 있는데 어디에서든 충분히 통할 영화작품이 수두룩하다. 사실 한류 바람을 타고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로 한국영화가 발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기도 하다.
장르도 그야말로 다양해 지고 있다. 한국인의 영원한 흥행 장르인 멜로, 코미디, 액션에 더해 SF, 공포물, 추리극, 역사물, 시대물, 애니메이션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액션도 '투캅스·공공의 적' 같은 경찰액션, '튜브' 같은 재난액션, '유령·블루' 같은 해양액션, '발해' 같은 항공액션, '무사·비천무·청풍명월' 같은 무협액션, '조폭마누라·피도 눈물도 없이' 같은 여성액션, '육각면체의 비밀·아 유 레디' 같은 모험액션 등이 펼쳐지고 있다.
코미디도 기존의 순수 코미디영화에 더해 액션코미디, 잔혹코미디, 공포코미디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SF영화도 '2009 로스트 메모리즈·예스터데이·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내츄럴 시티' 등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 시민들의 경우 괜찮은 영화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고 표를 사 영화관을 찾고 있어 한국영화가 잘되고 잘 만들어지면 성원할려는 애정을 엿보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나 자라나는 세대들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며 제대로 된 한국영화에는 엄청난 대박이 터지는 흥행수익을 올려주고 있기도 하다.
부산을 비롯한 몇몇 도시는 영화제작을 유치하기 위해 촬영장 제작 지원은 물론 소방차 및 도로 사용시 일체의 행정절차 대행과 서비스 제공 등과 같은 적극적인 지원에 발벗고 나서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영화인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한국영화를 둘러싼 토대도 매우 좋아지고 있다. 우선 감독이나 배우의 열정은 높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이 있고 영화계로 뛰어들려는 많은 꿈나무들이 모여든다. 특히, 기획·시나리오·연출·마켓팅·기술 등 각 부문별로 고급화·전문화된 영화인력이 제대로 교육받고 활약하게 된 토양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영상세대는 영화산업의 소비자이자 영화산업의 주축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제작 스튜디오나 컴퓨터그래픽 센터등 전문기관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영화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증가하면서 2002년 상영관 1천개 돌파로 영화를 더 쉽게 접하게 되면서 영화 관람 기회가 늘고 가족 단위 관객도 많아지고, 반복관람이 늘고 있기도 하다.
충무로는 이제 대기업과 금융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안정적인 자금원이 확보되고 배급과 수익의 투명성 제고와 계산법의 과학화 등도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제작·배급을 통해 영화시장의 파워를 대변하는 대형 영화사가 속속 등장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 헐리웃을 상대할 수 있는 영화산업의 힘도 갖추고 있다. 90년대 중반이후 시네마서비스·CJ엔터테인먼트 등 대표적인 대형 전문배급사가 등장하면서 한국영화의 파워를 강화하게 된 것이다.
나날이 커가는 영화산업도 좋은 징후다. 이제는 비디오 판매시장, 영화주제곡이나 삽입곡들의 음반 판매 수익, 대기업의 제작지원이나 기업의 자사제품 사용 후원·지원 등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공급과 소비구조를 갖춘 한국영화가 산업화 하고 있는 것이다.
9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일반·상업영화제로서 부산시민들의 뜨거운 열기속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광주비엔날레'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행사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한국의 3대국제영화제로 손꼽히는 전주국제영화제(디지털영화 중심의 대안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com, 판타스틱영화만 다룸) 등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둘러보시라. 한국인에 맞는 한국적 소재 또한 얼마나 많은가. 사랑이야기만 해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무왕과 선화공주, 춘향과 이몽룡 등 많고도 많다. 정치, 공포물, 심리물 등 없는 소재가 어디 있는가. 이를 현대감각에 맞게 각색만 해도 독창적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학과 풍자도 얼마나 즐기는 민족인데 없을 리 있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이든 반드시 있기 마련이며, 우리에 맞는 소재나 줄거리에 바탕한 시나리오는 능히 세계인의 가슴으로 파고 들 수 있는 법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한국영화는 문화상품이자 문화산업이다.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국영화 뿐이다. 한국적임은 그 성공의 담보물이자 우리만의 자산이기에 늘 활용해야 할 영화의 보고인 것이다.
한류는 동남아에서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서도 꾸준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 주역의 한 축이 영화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영화가 국제영화시장에서 확고한 위치에 서는 일이 더욱 본질적이고 중요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누구나 언젠가는 한국영화가 국내시장을 확고하게 지켜내는 국면을 넘어서서, 세계인들에게도 사랑받기를 염원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필자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감독,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등장해 활약하고 한국 영화가 세계영화상의 한 획을 긋게 되는 그런 작품이 쏟아졌으면 한다. 그렇다고 미국인에 맞는 미국의 시나리오로 영화시장에 짜맞추려 하다보면 엉성함은 물론이고 세계시장을 겨냥하자니 자기자신부터 위축되어 내놓을 수 없게 되는 교훈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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