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山東)성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산둥성에는 공자·맹자·묵자의 고향이 있고, 오악 중 으뜸이며 역대 제왕들이 봉선 의식을 거행하던 태산(泰山)이 있다.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요·순 임금이 다스리던 지역도 산둥성에 있었다. 현재 한국에 있는 화교 대부분이 산둥성 출신이기도 하다.
신화에 따르면 반고(盤古)라는 신이 우주를 창조한 후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가 펼쳐진다. 삼황은 여와씨, 신농씨, 복희씨 등으로 알려져 있다. 여와씨는 인간을 만들었고, 신농씨는 농사 기술을, 복희씨는 목축과 사냥 기술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삼황 시대를 신화로 간주하고, 오제 시대부터 역사로 다룬다. 오제는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다섯 성인으로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을 말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황하 유역에 모여 살던 부족을 황제(黃帝), 즉 황하를 닮은 누른빛의 지도자가 다스렸고, 그 뒤 전욱과 제곡을 거쳐 요임금과 순임금 시대에 태평성대를 이룬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순임금이 밭갈이를 했다는 역산(歷山)이 산둥성의 성도인 지난(濟南)에 있다. 역산은 현재 첸포산(千佛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지난 시내 남쪽에 있다. 4000년 전 순임금이 밭을 갈던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첸포산 기슭에는 순임금을 모시는 사당이 있고 도교 성인들의 조각들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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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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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호천 |
요임금과 그를 계승한 순임금은 천성이 어질고 지혜로워 임금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백성을 잘 다스렸다고 한다. 그런데 맹자에 따르면 순임금은 동방의 동이족이다. 순임금을 마지막으로 오제시대가 끝나며, 서쪽의 화하족이 일으킨 상나라가 세워지고, 은나라가 뒤를 잇는다. 그 뒤를 주나라가 이어받으니 중국 고대사의 정통성은 동이족이 아닌 화하족을 중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요·순임금의 정신은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살아 남아 후대까지 전해오고 있다.
현재 첸포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는 수많은 계단이 놓여 있고 정상까지 리프트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심장이 약한 사람은 타지 않는 게 좋다. 걸개를 대충 걸치고 수백 미터의 허공을 가르며 산을 올라가노라면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리프트를 타든, 계단을 걸어 올라가든 무척 힘든 길이다. 첸포산 정상에는 불교 사원과 도교 사원들이 많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먼 옛날 순임금의 자취를 돌아보기보다는 향을 피우고 현세의 복과 재물을 염원하는 기도에 열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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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돌천 안의 누각에 새겨진 동판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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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돌천 안의 찻집 |
첸포산 옆에는 산둥성에서 발견된 도자기와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16세기에서 11세기에 제작된 상나라 시대의 동항아리, 주전자,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유물들과 고대 화폐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사용된 칼자루 모양의 화폐 등 귀한 유물들이 많다.
지난은 예로부터 물이 많아 살기 좋았다. 지금도 시내에는 대명호라는 큰 호수가 남아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와 놀이터가 되고 있다.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도 이곳을 거닐며 시를 읊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데, 이 외에도 72개의 샘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샘은 표돌천(豹突泉·바오투취안)이다. 청나라 고종은 표돌천을 천하제일천이라 평했고, 이청조(李淸照)라는 송나라 때 지난 출신 여성 문인과 현대 문인인 궈모뤄(郭沫若), 라오서(老舍) 등이 표돌천에 머물며 글을 썼다고 한다. 이곳은 지금도 물이 풍부하게 솟고 있으며, 정원처럼 꾸며진 호수 주변에는 정자와 찻집들이 있어 정취를 돋운다. 또 누각의 벽에는 옛사람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새긴 동판화들이 남아 있어 그 시절을 쉽게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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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박물관의 유물들 |
표돌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흑호천이 있다. 표돌천이 호수 같은 샘이라면 흑호천(黑虎泉·헤이후취안)은 도심지를 흐르는 천으로, 한국의 청계천 같은 풍경이다. 천변에 만들어진 세 마리 검은 호랑이 조각의 입에서는 샘물이 흘러나오고, 그 위에는 약수터가 있어 시민들이 늘 애용하고 있다. 흑호천은 한때 매우 더럽고 오염되었으나 지금은 많이 정비되어서 꽤 맑다. 시민들이 오리처럼 생긴 배를 띄우며 놀 정도로 깊기도 하다.
지난은 근세에 독일이 지배한 적도 있어 100년 전에 만들어진 독일풍의 건물들도 간간이 보이지만 그리 예스러운 도시는 아니다. 산둥성의 성도인 지난은 태산이나 공자의 고향인 취푸에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근대화를 향해 전진하는 매우 활기찬 도시다.
여행 작가(blog.naver.com/roadjisang)
고속버스의 ‘고객 감동 서비스’
>>여행 에피소드
지난에서 칭다오(靑島)로 가느라 고속버스를 탔는데 서비스가 대단했다. 제복 입은 안내원이 둘이나 탔고, 버스 안에는 TV 두 대와 화장실도 갖춰져 있었다. 안내원들은 먼저 뜨거운 물을 주었다. 잠시 후 과자를 주었고 무말랭이 같은 야채도 내왔다. 이어 땅콩과 표돌천 캔맥주도 돌렸다. 물론 모두 무료였다.
서비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중간에 5분 정도 휴식시간을 가진 후 버스에 오르니 이번에는 커피를 돌렸다. 비행기 기내 서비스 같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예전에 감동했던 터키의 버스 서비스보다도 더 융숭한 대접인 것 같았다. 게다가 2006년이 다 끝나가는 시점이라고 2007년도 새해 달력까지 주는 게 아닌가. 또 둥근 비닐봉지를 갖고 다니며 일일이 달력을 넣어줄 정도로 안내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처음 버스에 탈 때는 안내원이 있었던 한국의 1970, 80년대 고속버스와 비슷한 풍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상상을 뛰어넘는 ‘고객 감동’ 서비스였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광경으로, 중국이 모든 면에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정보
인천에서 지난까지는 비행기로 갈 수도, 칭다오로 들어가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칭다오에서 지난까지는 버스로 약 5시간 걸리고, 요금은 1만2000원 정도. 숙소로는 7만, 8만원 하는 4성급 호텔인 지루빈관(齊魯賓館)이 첸포산 입구에 있고, 버스터미널이나 역 부근에도 3만, 4만원 정도 하는 빈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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